정말 케냐는 모범생인가? (버락 오바마 자서전 중에서)

아프리카의 모범생 케냐, 돌이키기엔 이미 늦었는가?


서구의 눈으로 볼 때 케냐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모범적인 국가가 되었다.
혼돈에 빠진 우간다나 사회주의를 실현하려다 실패하고 만 탄자니아와 비교하면 가장 안정적이고 유용한 모델이 되었다.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와 공무원이 되거나 의회에 진출했다. 키마씨는 거리의 이름이 되어 관광객들 앞에 나섰다.

 아우마와 나는 뉴 스탠리 호텔의 노천까페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는 자리를 잡고 앉아서 관광객들을 구경했다. 관광객들은 세계 각지에서 왔다. 독일, 일본, 영국, 미국....사진을 찍고, 소리쳐 택시를 부르고 행상을 피하는 관광객들은 하나같이 사파리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마치 영화 촬영장에 동원된 엑스트라들 같기도 했다. 어린 시절 하와이에서 나와 친구들은 창백한 피부와 말라깽이 다리를 드러낸 채 선탠을 한다고 누워있던 관광객들을 비웃으며 우리가 우월한 존재라는 자부심을 드러내며 으스대곤 했다. 그런데 여기 아프리카에서는 관광객들이 그다지 우스워 보이지는 않았다. 어쩐지 잠식당하고 침략당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의 순진함에서 어떤 모욕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아무런 내적 갈등도 겪지 않고 또 자의식의 상처에 아파하는 일 없이, 나나 아우마가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자유를 마음껏 누리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남의 땅이 아니라 자기 땅이라는 확신이 그들에게는 있었다. 그것은 제국주의 문화에서 태어난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확신이자 자신감이었다. (510~511pg)

 "근데있지, 내가 만일 아프리카 여자랑 둘이 있다면 여기서는 나이트클럽에도 못들어가. 우릴 창녀로 생각해서 못들어오게 하는거야. 여기있는 고층빌딩들도 마찬가지야. 이 빌딩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고 흑인이라면, 무조건 왜 이 건물에 들어가려고 하는지 용건을 설명해야 돼. 하지만 독일인 친구와 함께 있다고하면 무조건 오케이야. 활짝 웃는 얼굴로 인사까지 받는다구. '안녕하세요. 아가씨.' '즐거운 시간 가지세요.'" 아우마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니까 케냐가 아무리 GNP가 높고, 인근의 다른 나라에서 살 수 없는 물건들을 쉽게 살 수 있다 하더라도 다른 나라 사람들은 케냐를 비웃어. 아프리카의 창녀라고 말이야. 돈만 주면 누구에게든 다리를 벌린다고." 나는 너무 과민하게 생각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며, 자카르타나 멕시코시티 같은 데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불행한 경제적 여건 때문에 그런 것일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 말이 아우마가 느끼는 씁쓸함에 조금도 위안이 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아우마가 옳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513pg)

 그 웨이터가 야망을 가지고 있다면 뉴어크에 사는 컴퓨터 수리기사나 시카고의 버스 운전사가 그러는 것 처럼,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백인의 언어를 배우고, 백인의 기계를 다루는 법을 배우려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때로는 열정을 쏟고, 때로는 분노를 담아서. 하지만 대부분 마지막에는 체념하고 말지만.... 만일 그 사람에게 '당신은 신식민주의자들을 위해서 일하고 있소.'라고 한다면, 아마도 그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렇소. 그래도 일거리만 있다면 얼마든지 하겠소.' (...) 하지만 그 웨이터가 그렇게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는 마음 한 구석에 마오마오의 투쟁을 여전히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 백인의 방식은 자기 방식이 아니며, (...)그는 목숨을 걸어도 아깝지 않았던 어떤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 하지만 어느 쪽이 끝을 알 수 없는 가난에서 자기를 구원해줄지 재면서 목구멍까지 치미는 분노를 삭이려고 애쓴다. 어떤 목소리는 그 사람에게 '그렇다. 변했다.'라고 말한다. 옛날 방식들은 용도폐기되었으니, 가능한 빨리 자기 배나 불리라고 한다. 어떤 목소리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곧 온 대지를 불태워야 한다고 말한다. (515~516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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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 님의 블로그에 좀 부족한 댓글을 달았다가, '사회주의를 택한 다른 나라가 결과적으로 안좋지 않았느냐...'는 투의 반박을 받았는데... 이것은 전적으로 처음에 댓글을 잘못 단 내 잘못이다. 내가 원했던 것은 국가 내부 사정 등 여러 측면을 따져보면 '케냐는 애시당초 모범생이 아니다'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오바마의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에 나온 케냐는 분명히 모범생이 아니었다. 모범생이라 한다면, 성적은 좋지만, 성품이 좀 분열된... 선생님들과 부모님들만의 '모범생'일뿐, 급우들에게는 '왕따'이고 좀 성격도 문제가 있는 '모범생'이랄까. 그것은 케냐가 자본주의를 택하고, 다른 나라가 사회주의를 택한 것의 문제도, 그 결과의 문제도 아니었다. 결국 국가의 자존과 정체성을 확립하고 당당하게 다른 나라들, 특히 서구를 대할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휩쓸려 자존을 잃었느냐, 아무려면 어떻냐... 이방원의 하여가를 선택할 것이냐? 정몽주의 단심가를 택할 것이냐다.

 쓰고 나서 후회할 댓글이고, '그럼 사회주의를 택했어야 하느냐?'는 반론이 당연히 올라올 댓글이긴 했지만, 쓸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치는 않는다. 결국 서방세계의 눈을 통해 전해지는 케냐의 이야기는 서방세계의 시각을 통해 한 층 걸러져 온 정보일 뿐 아닌가. 일단 의심하고 비판하고 보자. 국제정치학 구성주의의 크리티컬 씽킹은 정말 유용하다. :-)

by 테라포밍 | 2008/02/13 16:53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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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윌리 at 2008/02/13 17:05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링크 신고합니다.

아프리카의 여러나라들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연속에서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국민들이 풍요롭게 살기 위해서는 나라의 운영시스템 준비, 경제활성화, 민주주의 정착등.. 참 많은 과제들을 해결해야 할텐데 걱정입니다.

미래를 바꾸는 가장 중요한 변화의 요인이 되는 것이 바로 국민들을 위한 기본적인 교육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람을 키우고 가르치는 일이 나무를 키우는 것처럼 한순간에 될 수도 없고 많은 비용과 노력, 시간이 드는 일이지만 결국 이런 내전, 종족간의 혈투를 종식시키려면 어렵더라도 교육에 하나씩 투자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오바마의 자서전 한번 사서 읽어봐야 겠네요. ^^
Commented by rumic71 at 2008/02/13 17:18
어쨌든 모든 인민이 이팝에 고깃국을 먹는 게 궁극적인 투쟁 목표 아니겠습니까. (이게 누구 말이더라...)
Commented by 테라포밍 at 2008/02/13 17:24
to 윌리 // 비판적으로 보자면... 교육도 국가의 이데올로기를 다양한 국민들에게 공통적으로 주입시키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
그 이데올로기가 상호 존중과 청렴과, 평등과 자긍심에서 우러나오는 품격이라면 모르겠지만...케냐의 경우, 그것은 어쩔 수 없이 먹고 살기 위해
상당부분 무시된 경향이 없지 않으며, 부족(민족)주의의 나눠먹기로 크게 훼손됐습니다. 서방세계의 가치관과 교육체계를 잘 받아들여서 성공한
나라가 인도와 일본을 들 수 있겠는데... 뭐 그것도 완벽하지는 않지요. :-)
to rumic71 // 그거 혹부리영감이 한 얘기 아니겠슴메? 하지만, 인간에게는 궁극적으로 지배에 대한 욕구. 정치에 대한 욕구가 있다고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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