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5월 09일
LeMonde-080509-버마라는 희생자

‘버마’라는 희생자
버마는 진짜 희생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미 무자비한 군사 독재의 가혹함에 굴복한 버마는 오늘 부분적으로 사이클론(나르기스)에 의해 재앙적인 속도로 초토화됐다. 비극의 나흘 뒤, 희생자 집계는 공식적으로 2만 3천명 사망, 4만 2천명 실종에 이르렀다. 사실, 이 “실종자”들을 되찾거나, 부상자들을 구할 희망은 날이 갈수록 얄팍해진다. 공식 추산들은 이미 10만 명이 사망한 수준이 된다.
이는 이미 비참한 역사의 나라에서 살아온 국민에 대한 무서운 비극이다. 동남아시아는 수마트라(인도네시아) 먼 바다에서 일어난 2004년 12월의 츠나미(거대 해일)이래, 유사한 드라마로 인식되지 않았다.(역자 주: 같은 지역이나, 국가별로 양상이 다 달랐다.) 이 재난에 대하여, 버마 정부의 태도는 난동에 가까웠다. 분명, 버마 정부는 국제적 지원의 원칙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다른 시대의 편집증적 반응 속에서 (국제사회에) 반항하는 군사정권은 오만한 정치적 감시를 이 지원의 공급에 부과하는 것을 강력하게 하고 있다. (구호의) 전선(戰線)에 나가길 참고 기다리는 국제(구호)팀의 입국에 즉각적인 녹색등을 보이기보다, 버마 정부는 주저하고, 관료적인 족쇄를 배가(倍加)시킨다.
극도의 위급함이란 맥락 속에서 이런 제어에 대한 집착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잃어버린 매 시간들은 추가적인 희생자들로 가득 차게 되는데, 생존자들이 전염병의 위협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외무장관인) 베르나르 쿠슈네르가 버마 정부의 태도를 구성하는 것이 “재난 중에서도 재난”이라고 질책했던 데에는 일리가 있다. 한 번 더, 국제공동체는 국민의 고통보다 정치적 생존에 더 신경을 쓰는 체제가 직면한 무능에 대해 비난했다.
추한 이야기다. 인도적 간섭과 국가들의 “지극히 신성하다는 주권”간의 대립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프랑스는 난관의 윤곽을 그리려 노력했다. 버마의 문을 강제로 열기 위하여 국제연합에 국민들에 대한 “보호책임” 개념을 들면서 말이다. 프랑스는 중국, 러시아 만큼이나 미국에 부딪혔는데, 이들은 모든 형태의 초국가적인 명령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얼마나 많은 버마 사람들이 요 다음 며칠간, 비난받아 마땅한 외교의 비열한 행동으로부터 죽어갈 것인가?
* 해당국가의 민주화세력은 '버마'로, 군부는 '미얀마'로 국호를 삼고 있습니다.
(사진출처 : http://i.l.cnn.net/ )
[원문]
Edito du Monde
Martyre birman
LE MONDE | 08.05.08 | 14h36
La Birmanie vit un véritable martyre. Déjà soumise à la férule d'une implacable dictature militaire, elle est aujourd'hui partiellement dévastée par un cyclone (Nargis) aux allures catastrophiques. Quatre jours après la tragédie, le décompte des victimes s'établissait officiellement à 23 000 morts et 42 000 disparus. En réalité, les espoirs de retrouver ces "disparus" ou de sauver les blessés s'amincissent au fil des jours. Des estimations officieuses font déjà état de 100 000 tués.
C'est une tragédie épouvantable pour une population qui vivait déjà dans un état de misère chronique. L'Asie du Sud-Est n'avait pas connu pareil drame depuis le tsunami de décembre 2004 causé par un séisme au large de Sumatra (Indonésie). Face à cette calamité, l'attitude des autorités birmanes confine au scandale. Certes, elles ont accepté le principe d'une aide internationale. Mais la junte militaire, cabrée dans un réflexe paranoïaque d'un autre âge, se fait fort d'imposer une sourcilleuse tutelle politique à cette offre d'assistance. Plutôt que de donner son feu vert immédiat à l'entrée des équipes internationales qui patientent à ses frontières, elle tergiverse et multiplie les entraves bureaucratiques.
Cette obsession du contrôle dans un contexte d'extrême urgence est inadmissible. Chaque heure perdue est lourde de victimes supplémentaires, alors que les survivants sont exposés aux risques d'épidémie. Bernard Kouchner a eu raison de fustiger la "catastrophe dans la catastrophe" que constitue l'attitude du régime birman. Une fois encore, la communauté internationale est condamnée à l'impuissance face à un régime davantage soucieux de sa survie politique que des souffrances de son peuple.
Vieille histoire : celle de la contradiction entre le "devoir d'ingérence" humanitaire et la sacro-sainte "souveraineté" des Etats. La France a tenté de contourner l'obstacle en invoquant aux Nations unies le concept de "responsabilité de protection" des populations pour forcer les portes de la Birmanie. Elle s'est heurtée à des Etats, telles la Chine et la Russie, allergiques à toute forme d'injonction supranationale. Combien de Birmans vont périr ces prochains jours de ces coupables lâchetés diplomatiques ?
Article paru dans l'édition du 09.05.08
# by | 2008/05/09 20:56 | 프랑스어 연습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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