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5월 02일
LeMonde-080502-반(反)파시즘이여 안녕히

‘지아니 알레마노(Gianni Alemanno)’가 로마의 시장직(職)인 캄피도글리오(Campidoglio)에 다다른 것은 이탈리아 공화국의 역사에서 ‘처음’을 구성한다. 그 불멸하는 도시의 최고 행정관이 우파에 속하는 것은 분명 처음은 아니다. 1993년과 이 해의 불운한 후보인 ‘프란체스코 루텔리(Francesco Rutelli)’를 기다려야 했는데, 좌파가 기독민주당에 이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1943년 무솔리니가 몰락한 이래, 로마의 시장들은 “헌법의 아치”라 이름 붙이는데 어울릴 것으로부터 나왔는데, 이는 소위 레지스탕스와 1946년의 공화국 건국에 참여했던 정당들이다. 의석점유는 기독민주주의자로부터 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에 이르렀다.
알레마노 씨는 이 패밀리에 속하지 않는다. 그는 '이탈리아 사회운동(신(新, neo)파시스트)'의 옛 청소년 지도자인데, 여러 해 동안 두체(Duce, 무솔리니에 대한 경어)와 그들의 유산에 대한 향수를 그러모았다. 의심할 바 없이, 로마의 새로운 시장은 그의 당수인 ‘지안프랑코 피니(Gianfranco Fini)를 공화국의 존엄성을 가로지르는 동안 좇았는데, 이는 무솔리니의 상징들을 숭배하는 것으로부터 그를 각료의 자리로 옮겨놓았다. 그의 승리는 그의 옛 이데올로기적 신념보다는 최근의 입법의원 선거 패배로부터 혼이 난 좌파의 약한 동원력 탓이다.
이탈리아가 매년 그렇듯 그들의 해방을 기리는 바로 4월 25일에도 전통은 엉망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매년 그렇듯, 이 축제는 레지스탕스의 신화를 걷어내는데 골치가 아픈 좌파와 이 좌파를 헐뜯고, 이탈리아의 역사적 정통성을 무너뜨리는데 골몰하며 “탈파시즘”의 “길 잃은 아이들”을 복권시키는데 까지 나아가는 베를루스코니 우파간의 논쟁을 낳았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권좌로 돌아오고, 옛 신(新)파시스트(neo-facist)가 로마의 시장으로 선출되고, 전통적 좌우 분리를 넘어설 것을 주장하는 두 정당이 의회에 등장한 것은, 진정으로 이탈리아의 역사적 시기를 끝내버린다. 이 역사적 시기엔 정당간의 라이벌성(경쟁성) 저쪽에서는, 반파시즘이 정계의 튼튼한 정신적인 유대였다. 무솔리니의 몰락 65년 후, 역사의 몰양심(沒良心, 양심 없음)이 신화로 대체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이(반파시즘)는 불가피하고, 아마도 바람직한 것이다.
[역자설명]
1. 파시스트(Facist)에 대한 정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사전에는 파시즘(Facism)을 추종하는 사람들이라고 나와 있고요, 파시즘에 대해서는 ‘제 1차 세계대전 후, 무솔리니를 중심으로 하여 일어난 주의. 정치적으로는 독재, 경제적으로는 노사 협조주의, 대외적으로는 민족주의, 조국 지상주의를 주장함’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파시스트가 왜 나쁘냐. 지도자의 독재를 표방하며 국민의 자유를 빼앗고, 국가의 목표를 위하여 노동자의 불만을 찍어 누르며(2차세계대전 무렵 무솔리니의 지지층은 이에 편승한 사용자측이었습니다), 조국 지상주의를 내세우며 해외 침략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파시즘의 영수 무솔리니는 시체가 거꾸로 매달려 국민들의 침과 돌세례를 맞고 말았죠.
이게 현대에 다시 살아난 이유는... 이탈리아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북부도시가 잘 살고 남부도시가 못사는 것이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EU에 속해 있으면서도 그 경제적 이득을 잘 보질 못합니다. ‘마피아’로 대변되는 부정부패는 말할 것도 없고요. 그래서 국민들은 이 모든 것을 휘어잡고 해결해줄 강력한 지도자, 강력한 정부를 원하기 마련입니다.
이 점에서 단호하지 못하고 미적대는 것처럼 보이는 좌파는 미덥지 못합니다. 전임 내각이 여러 사건으로 국민 인상이 좋게 박히질 않은 것도 있고요. 그래서 우파를 택하기 마련인데, 이탈리아 국민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하필이면 검증받은 ‘부패 정치꾼’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를 또 밀고 말았습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못 믿겠다는 ‘화끈한’ 일부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확 뒤집어버릴 현대판 파시스트(네오 파시스트)로 기울었으며, 로마 시장은 물론, 파시스트 정당 두 개를 원내에 진출시켜주고 말았습니다.
2. 이탈리아 국민들의 ‘국개’스러운 행동은 국회의원 선거뿐만 아니라 로마 시장 선거에서도 일어나고 말았군요. 프랑스가 사르코지와 극우파로 정신 못 차리고, 폴란드는 한바탕 민족주의 홍역을 치렀고, 벨기에는 잘사는 쪽이 떨어져 나가겠다고 난리치고, 이젠 이탈리아마저 미쳐 돌아가는 판입니다. 믿을 건 독일하고, 영국, 그리고 스페인이군요. 이 세 나라가 중심을 잘 잡고 지켜줘야 유럽이 편할 겁니다. 변수는 ‘러시아’인데, 사르코지나 베를루스코니가 푸틴하고 친하게 지내려고 설레발치는 걸 보니 불안정성이 더 커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진출처 : http://wwwimage.cbsnews.com/images/2008/04/28/image4051740.jpg
그 파시스트 지아니 알레마노. 베를루스코니의 공천을 받아 당선됐습니다.)
[원문]
Edito du Monde
Adieu à l'antifascisme
LE MONDE | 30.04.08 | 15h15 • Mis à jour le 30.04.08 | 15h15
L'arrivée de Gianni Alemanno au Campidoglio, la mairie de Rome, constitue une première dans l'histoire de la République italienne. Ce n'est certes pas la première fois que le plus haut magistrat de la Ville éternelle appartient à la droite. Il a fallu attendre 1993 et l'élection de Francesco Rutelli, le candidat malheureux de cette année, pour que la gauche l'emporte sur la Démocratie chrétienne. Mais, depuis la chute de Mussolini, en 1943, les maires de Rome venaient tous de ce qu'il était convenu d'appeler l'"arc constitutionnel", c'est-à-dire les partis ayant participé à la Résistance et à la fondation, en 1946, de la République. L'éventail allait des démocrates-chrétiens aux libéraux, aux socialistes et aux communistes.
M. Alemanno n'appartient pas à cette famille. C'est un ancien dirigeant des jeunesses du Mouvement social italien (néofasciste), qui, pendant des années, a rassemblé les nostalgiques du Duce et leurs héritiers. Sans doute, le nouveau maire de Rome a suivi son chef, Gianfranco Fini, dans sa marche vers la respectabilité républicaine, qui l'a fait passer de la vénération des emblèmes mussoliniens à un poste ministériel. Il doit sa victoire moins à ses anciennes convictions idéologiques qu'à la faible mobilisation de la gauche, sonnée par sa défaite aux récentes élections législatives.
Une tradition n'en est pas moins rompue au moment même où, le 25 avril, l'Italie célébrait, comme chaque année, sa Libération. Et, comme chaque année, cette fête a donné lieu à des polémiques entre une gauche qui a du mal à se défaire des mythes de la Résistance et une droite berlusconienne qui, acharnée à dénigrer la gauche et à saper la légitimité historique de celle-ci, va jusqu'à réhabiliter les "enfants égarés" du postfascisme.
Avec le retour de Silvio Berlusconi au pouvoir, l'élection à la mairie de Rome d'un ancien néofasciste et l'apparition au Parlement de deux partis qui prétendent dépasser le traditionnel clivage gauche-droite, une période de l'histoire italienne se clôt vraiment. Celle où, par-delà les rivalités partisanes, l'antifascisme était le ciment de la société politique. Soixante-cinq ans après la chute de Mussolini, c'est inévitable et, peut-être, souhaitable, à condition que l'absence de conscience historique ne se substitue pas au mythe.
Article paru dans l'édition du 02.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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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8/05/02 22:20 | 프랑스어 연습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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