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4월 07일
LeMonde-080405-중국과 올림픽정신

중국과 올림픽정신
중국당국은 불만이다. 그들은 파리 시민들에게 올림픽 성화를 4월 7일 월요일에 잘 맞이하라고 요구한다. 중국 당국은 프랑스 수도, 파리에서의 시위를 우려한다. 그걸 대놓고 아주 크게 말하려 들지는 않고, 그들은 파리 시장의 발의를 온건히 평가할 뿐이다. 베르트랑 델라노에(파리 시장)는
중국당국의 불만은 끝나지 않는다. 유럽, 그리고 기타 지역에서 올림픽 성화의 경로에 중국의 인권침해에 대한 항의 시위가 모여질 것이다. 티벳에서의 사건 없이도 마찬가지로 같을 터였다. 그러나 중국의 속박에 대항한 티벳 사람들의 항거가 그 움직임을 강화시켰다. 다시 말해서, 필요하다면, 중국에서의 작은 민주주의를 용감하게 요구하는 이들의 싸움을 조금 더 정당화시키는 것이다.
성화의 여정, 그것은 티벳에 가해진 은밀한 탄압에 대항하는 모임의 점들에 상응한다. (역자 주 : 봉송로 어디에서나 반중시위가 있을 터다.) 그 일련의 터무니없는 체포들과, 고문, 그리고 구타들에도 마찬가지로 대항해서. 그리고 굳이 말하자면, 이 항의는 정당한 것이다.
그러니 중국 정부는 놀람을 가장할 수 없다. (역자 주 : 진짜 놀랄 수밖에 없다.) 2008년 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북경의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중국정부는 당연히도 최근 몇 년간 중국에 의해 이룩된 거대한 발전들에 대한 인정의 방식을 요청했다. 그러나 중국정부는 그렇게 해서 하나의 일반적인 시선, 그러니까 매체적이고, 일신(一新)된 시각에 노출됐음을 알았다. 우리는 중국정부가 훌륭한 민주적 의지의 보증을 제공하고, 달라이 라마와의 대화를 재개하며, 반대자들에 대한 억압을 제한하는데, 특히 (그들의) 법을 존중하는 정부를 요구하는 데만 만족하는 이 들에 대한 억압을 제한하는데 유념하기를 생각할 수 있었을 터다. 우리는 IOC(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 통과된 협정에 중국 지도자들이 경제에 대한 커다란 도약에만 그치지 않도록 약속하는, 그 용어상 은밀했을 일종의 조항을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에 대한 것은 전혀 없다. 올림픽에의 전망은 반대의 최소한의 기미에 대한 탄압을 도드라지게 한다. (역자 주 : 반항하는 기미가 조금만 보여도 탄압에 들어갈게 눈에 선하다.) 중국정부는 4월 4일 금요일 저녁에 프랑스 정부에 ‘올림픽정신’을 존중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똑바로 말해서 인간적인 개인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존중에 부가(附加)된 인간애(휴머니즘)가 쇠퇴하는 게 아니라면, 뭐가 ‘그 올림픽정신'의 가치란 말인가? (역자 주 : 중국이 ‘올림픽정신’ 운운하는 것은 X소리다.) 그 정신을 위반한 것은 델라노에 씨가 아니다. 중국 지도자들이다. 그들이 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할 때, (지난) 4월 3일에 3년 반 투옥을 선고받은 ‘후 지아(Hu Jia)’처럼 평화적이고 적법한 시위자들을 감옥에 가둘 때, 모든 관찰자들로부터 티벳을 “닫아”버릴 때, 그들은 그만큼 올림픽정신에 타격을 가하는 것이다.
* 비으 호텔 → 시청(市廳) / sur la façade de l'Hôtel de Ville → 시청앞 광장
'델라노에' → '들라노에' 로 수정합니다. (Merci. 까소봉)
[원문]
Edito du Monde
Pékin et l'olympisme
LE MONDE | 05.04.08 | 12h22 • Mis à jour le 05.04.08 | 12h22
Les autorités chinoises ne sont pas contentes. Elles appellent les Parisiens à faire bon accueil, lundi 7 avril, à la flamme olympique. Elles redoutent les manifestations dans la capitale française. Sans oser le dire tout haut, elles n'apprécient que modérément l'initiative du maire de Paris. Bertrand Delanoë a décidé de faire déployer sur la façade de l'Hôtel de Ville une banderole osant proclamer l'attachement de la capitale aux droits de l'homme " partout dans le monde ". M. Delanoë a expliqué qu'il s'agissait d'un " message amical à tous les peuples, et notamment au peuple tibétain ".
Les autorités chinoises ne sont pas au bout de leur mécontentement. Le parcours de la flamme olympique, en Europe et ailleurs, va ressembler à celui d'une manifestation de protestation contre les violations des droits de l'homme en Chine. Il en aurait été ainsi même sans les événements du Tibet. Mais la révolte des Tibétains contre le joug de Pékin a renforcé la mobilisation : elle légitime un peu plus, s'il en était besoin, le combat de ceux qui osent réclamer un peu de démocratie en Chine.
L'itinéraire de la flamme, c'est autant de points de ralliement contre la répression à huis clos qui sévit au Tibet – avec son cortège d'arrestations arbitraires, tortures et tabassages –, et c'est de bonne guerre, est-t-on tenté de dire.
Car le gouvernement chinois ne peut feindre la surprise. En présentant la candidature de Pékin pour héberger les JO 2008, il sollicitait à bon droit une manière de reconnaissance pour les immenses progrès accomplis par la Chine ces dernières années. Mais il savait qu'il s'exposait alors à une attention générale, et donc médiatique, renouvelée. On aurait pu penser qu'il aurait à coeur de donner des gages de bonne volonté démocratique, de reprendre le dialogue avec le dalaï-lama, de limiter la répression des dissidents, particulièrement de ceux qui se bornent à réclamer du gouvernement qu'il respecte la loi – sa loi. On aurait pu imaginer qu'il y avait dans le contrat passé avec le Comité international olympique (CIO) une sorte de clause implicite aux termes de laquelle les gouvernants de Pékin s'engageaient à ne pas s'en tenir au seul grand bond en avant économique.
Il n'en n'est rien. La perspective des JO accentue la répression de la moindre esquisse de contestation. Le gouvernement chinois appelait, vendredi 4 avril au soir, Paris à respecter l'esprit olympique. Mais, justement, que sont les valeurs de l'olympisme sinon la déclinaison d'un humanisme attaché au plus élémentaire respect de la personne humaine ? Ce n'est pas M. Delanoë qui viole cet esprit-là. Ce sont les dirigeants chinois. Quand ils répriment brutalement les manifestations, quand ils embastillent un contestataire pacifique, légaliste, comme Hu Jia, condamné, le 3 avril, à trois ans et demi de prison, quand ils " ferment " le Tibet à tout observateur, ils portent autant de coups à l'esprit olympique.
“프랑스는 앞으로 중국과 장사를 어떻게 하려고, 최고 정론지라는 르몽드가 이런 사설을 싣는 걸 내버려 뒀나.”라는 생각을 아마 ‘몇몇’ 우리나라 사람들이 할 법 하다. 이를테면 ‘동중조’ - 정권에 아부하는 정도가 이렇게 바뀌었다 - 가 일제히 중국을 비난하고, 성화 봉송로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라는 사설을 실은 것과 마찬가지니까.
여보세요. 남들이 머뭇거리고 덮어두려고 할 때 지 할 얘기를 하는 게 정론지(正論紙)에요.
이런 매체들은 집권 세력과 대세(大勢)를 비판하는 ‘깡’으로 먹고 살아요.
무슨 ‘기관지’나 다름없는 게 정론지, 아니 그게 언론이라도 되는 줄 아십니까? 자원낭비지.
그런데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나 있겠지만, 우리나라에서 몇 십년 사이에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아서 매우 유감스럽다. ‘양심이고, 염치고, 남의 사정이 무슨 소용이냐. 먹고 살자면, 남보다 더 잘 살자면 무엇이든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이 요즘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대선, 그리고 이번 총선을 통해 그 생각이 더욱 확실해지고 있다. ‘정말 국민이 미친 것 아니냐?’라는 얘기는 허언이 아닌 것 같다.
티벳이 중국에게 당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일본에 당했던 것과 똑같다. 우리가 일본에 당하고 있을 때, 전 세계에 우리의 독립을 옹호해 준 ‘우리보다 잘 살던 나라는’ 하나도 없었다. 그저 우리처럼 외세에 착취 받던 몇 나라, 특히 ‘인도’가 우리를 치켜세워주고, 힘을 북돋아 주었다. 그러나 당시 지식인들은 우리보다 더 못사는 나라인 인도를 찾아 자기만족을 했다는 연구결과가 최근에 나왔다. 그 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왜 이렇게 저질인지 모르겠다.
힘들이지 않고 비교적 쉽게 고난에서 벗어나면, 그 고난의 교훈을 제대로 못 얻는 게 세상의 이치인데, 독립을 남이 쥐어줘서 운 좋게 하고 나니, 옛 일은 쉽게 잊은 듯하다. 패전국인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은 독립이 외부에서 주어지니, 정신 못 차리고 있다가 영어 좀 하는 친일파가 다시 집권했고, 계속 그들의 신조, ‘어떻게든 잘 사는게 장땡’이 이 나라를 지배해 왔다. 바로 ‘꺼삐딴 리’의 정신이다. 이거 요새도 학교에서 가르치나? 읽기는 하나?
반면 승전국인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는, 물론 영국이 약해진 것도 한 몫 했지만, 스스로의 투쟁으로 독립을 쟁취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제 3세계의 리더가 되어 강대국들에 맞서기 시작했다. 인도라고 잘 살았겠냐? 게다가 힌두-이슬람으로 갈려서 내부 분쟁도 심했고 결국 파키스탄, 방글라데시가 독립해 나갔다. 그러면서도 못사는 나라, 갓 독립한 나라들이 뭉쳐서 잘 해보려고 했다. 당장 잘 사는데 혈안이 돼서일까? 아니면 미국이 막아서일까? 이 인도의 노력에 응답했던 것은 남한이 아니라 북한이었다. 쩝.
하여튼, 정말 염치가 있으면, ‘중국 거슬러서 좋을 것 없다’는 옛 친일파들의 ‘어떻게든 잘 살고 보는 게 장땡’이란 생각은 함부로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겠다. 하지만 현 정부의 기조나, 3대 일간지의 성향을 보아하니 르몽드처럼 대놓고, 용기 있게 중국을 비난하는 기조는 찾아볼 수 없을 것 같다. 뭐 굳이 경제적으로 잘 살고 보는 것뿐만 아니라, 짱나서 돌아서버린 북한을 제어하려면 이젠 중국 라인밖에는 없으니까 잘 보일 수밖에 없을 수도 있겠다. 골치 아픈 동북아시아 문제에서 자유로운 프랑스니까 이정도 소리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능하다. 이렇게 여러모로 변명조의 생각을 떠올리는 내가, 그리고 중국 비난은 대놓고 못해도 적어도 그런 ‘어떻게든 잘 살고 보자’는 시각을 준엄하게 꾸짖지 못하는 우리 언론이 안타깝다.
※ 베르트랑 델라노에는 [벨리브]라는 자전거 대여시스템을 파리에 도입하여 화제가 됐던 사람으로 이번에 파리 시장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커밍아웃한 동성연애자이며, 제 1야당인 사회당(PS) 소속이다. 사르코지도 중국을 비난하고는 있으나, 그게 정말 프랑스적인 정신 덕인지, 인기영합적(포퓰리즘) 행태인지는 알 수 없다.
# by | 2008/04/07 15:49 | 프랑스어 연습 | 트랙백(1)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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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르몽드 지, 중국과 올림픽 정신.
LeMonde-080504-중국과 올림픽정신사실 소련도 했고 미"쿡"도 했고 독제정권 하의 우리도 했고 심지어 히틀러 시절 독일까지 했는데 중국이라고 올림픽하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예.프랑스는 특별히 좋아하는 나라는 아니지만---게다가 파리고 뭐고 관심도 없다----르몽드 지의 사설 번역을 하신 분의 번역도 그렇고, 쓰신 말씀도 가슴에 와닿네요.특히 정론지. 예, 우리나라엔 정론지 없습니다. 정론지라고 주장하며 국민을 현혹시키는 언론재벌은 있......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