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04일
LeMonde-091004-베를린 장벽의 기억
<요약>
11월 9일은 베를린 장벽이 20년 전, 1989년에 무너진 날이다. 그 때부터 옛 소비에트 공산주의에 속해있던 나라들은 정치-경제적 전환, 사유재산제도의 도입, 그리고 유럽협조체제에 뭉치는 노력을 해야 했다. 그리고 과거의 문제들을 해결해야 했다. 특히 공산주의자들의 범죄 말이다. 그 와중에 많은 스캔들과 국론분열이 일어났고, 반공투쟁의 영웅들이 피해를 입었다. 지금 세대는 과거 공산치하의 궁핍, 억압, 그리고 대규모 정치선전을 전혀 모른다. 과거를 모르는 것은 안타깝지만, 그런 것들에 대한 걱정이 없는 모습은 우리를 즐겁게 한다.
Le 9 novembre, c'est la vingtième anniversaire de la chute du mur de Berlin, qui a lieu en 1989. Depuis ce temps-là, les affiliés du communisme soviétique devaient faire la transition politique et économique, l'introduction de la propriété privée, et l'intégration à le concert européen. Et plus, il lui a fallu régler les problémes du passé. Notamment, les crimes des anciens communistes. Au cours du grand chantier, de nombreux scandales et divisions sont arrivés, et les héros de la lutte contre la communisme sont devenus des victimes. Les générations d'aujour d'hui ne savent rien de la privation, la pression, et la propagande massive. C'est dommage qu'elles n'en connaisent, mais le fait qu'elles sont insoucieuse de le mauvais histore du passé nous fait réjouissante.
<분석 및 전망>
-. 옛 공산주의권역 국가들의 현 세대가 과거의 억압(공산주의의 폐해)이 재연될까 걱정하지 않는 모습은 베를린 장벽 붕괴의 좋은 결과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자기네들에 닥친 새로운 억압에는 걱정을 많이 하고 있을 것이다. 몇 주 전 France2 20H뉴스에 따르면, 아직 산업이 충분히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젊은이들 대다수가 일자리를 찾아 이주하고 싶어 하며,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란다. 그리고 이 동부 지역 및 이 지역출신자들에 대한 서부지역의 ‘백안시’가 이 젊은이들의 정착과 생활영위를 다소 어렵게 만들 것이다.
-. 우리는 일자리를 찾아 남한지역으로 온 북한출신 젊은이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제발, 제발 2등 국민 취급을 하지 말아야 할텐데...
베를린 장벽의 기억
11월 9일이 되면, 유럽 사람들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을 기념할 것이다. 그 사진들을 보니, 그 먼 옛날을 떠올리게 된다. 20년이란 세월은 유럽 대륙, 그리고 그 천년의 역사에 비할 바는 못 된다. 그래도 지난 20여년은 상궤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당시) 이 세상은 흥분하고 있었다. (원문: 심장이 빨리 뛰었다.)
그 때, 알 카에다의 테러는 아직 국제관계를 엉망으로 만들어놓진 않았다. 세계화는 확실한 현상은 아니었다. 환경보호문제는 분파라고도 할 수 없을 몽상가들의 최신 경향으로 여겨졌다. 그 때, 유럽의 각 나라들은 자기네 통화를 갖고 있었다. 동구권과 서구권의 대립은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덕에 그 강도가 줄었지만, 그래도 항상 이 두 진영은 서로에 맞서왔다.
그 때, 1989년에, 세상은 경악스런 속도에 빨려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공산주의에서 벗어났으며, 자유에 어리둥절해있던 나라들에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독일은 재통일 됐다.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지만, 평화로운 전환이란 행복감은 오래 가지 못했다. 경제와 정치 체제를 바꿔야 했고, 사유재산제도를 도입해야 했으며, 유럽 협조체제에 뭉쳐야 했다.
20년이 지나보니, 우리가 그에 닥친 난관의 규모를 유념한다면, (장벽 붕괴의) 세계적 결과는 놀라울 정도다. (지금) 이 나라들에 만연한 일반적인 무관심은 (지금 이뤄진 것들에 대해) 가장 훌륭한 헌사를 바치는 것이다. 실질적인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나 구 소련 체제에 부속돼있던 각 나라들은 자기네 방식으로 과거의 문제들을 해쳐나가야 했다. 나름의 경험과 지도자들의 특성에 따라 말이다. 특히, 역사는 공산주의자들의 범죄를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구 공산체제의 인물들에 책임을 어떻게 지울 것인가? 당시 이뤄지던 개인적 전횡이 지속되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일종의 ‘마녀사냥’같은 과도한 것에 빠지지 않고 말이다.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을 맞아, 르몽드는 다섯 개 나라에서 생생한 공산주의의 기억을 다루기로 했다. 10월 매주 토요일에 발간될 이 기사들 내내, 우리는 이런 변환의 도전에 연관됐던 나라들이 스캔들과 분열에서 자유롭지 못했음을 상기시킬 것이다. 즉 ‘역사의 서술에 격론이 벌어질 것임을 알려주겠다. 공산주의체제에 맞선 투쟁의 영웅들도 종종 일종의 기억상실, 더하여 배은망덕과 일부 여론의 희생자가 됐다. 새로운 세대들은 궁핍과 억압과 대규모 정치선전을 전혀 모른다. 그들의 무지(無知)는 유감스럽다. (하지만) 걱정이 없는 이들의 모습은 (우리를) 즐겁게 한다.
# by | 2009/10/04 18:46 | 프랑스어 연습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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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시점에서는 우려스럽긴하죠. 북한일대에는 서울말 배우는 분위기가 불것이고...지금의 외국인노동자문제에 북한출신이 더해질거라는 생각만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