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7월 08일
LeMonde-090708-사회참여적 교황
<요약>
7월 7일,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세 번째 회칙인 ‘진리 속의 사랑’을 발표했다. 교황의 회칙은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부합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번 회칙은 세계화에 대한 그의 이해와 생각을 담고 있다. 교황은 세계화가 공동선을 위해야 하고, 신의 은총을 회복시켜야 하며, 자체의 역기능을 경계해야 함을 강론했다. 베네딕토 16세는 매우 도덕 우선적이고 보수적인 교황이라는 평가가 있었지만, 전임자들과 마찬가지로 ‘공동선을 위한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점에선 사회참여적인 교황이다.
<분석 및 전망>
-. 별로 놀랄 것도 없고... 오히려 좀 더 일찍 나왔어야 할 회칙이다. 이번 회칙이 한국어로 번역됐는지를 보고, 르몽드가 찾아내지 못한 부분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 국제정치적으로 ‘교황’의 전 세계적 권위는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1) 현실주의 : 국가가 자신의 이익추구에 도움이 된다면 교황의 권위를 인정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정교분리’를 내세우며 무시할 것이다. 즉, 교황(청)은실질적으론 아무 독자적 영향력이 없는, 그저 국가의 국익추구를 용이하게 하는 조직일 뿐이다.
2) 자유주의 : 전세계에 퍼져있는 가톨릭 교회의 조직(교황청의 조직)은 선교와 자선-구호사업을 통해 발생할 수 있는 긴장을 완화-제거시키고, 상호이해를 증진시키는 ‘제도’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카톨릭 종교의 교리와, 교황의 권위는 전 세계 카톨릭 신자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규범’의 역할을 한다. 즉 종교로서의 카톨릭 교회, 교황, 그리고 교황청은 초국가적, 범세계적 규범, 레짐, 기구의 역할을 하며, 세계의 평화를 이룩하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추가하여 카톨릭 교회의 종교적 관용성은 크리스트교가 이슬람교와의 관계를 개선하여 세계평화를 기하는데 좋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3) 구성주의 : 가톨릭 교회의 교리와 체계가 전 세계의 신자들이 가진 사고와, 행동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각 국가의 사회운영방식이나 체계에 영향을 미친다. 즉, 모든 정치적 행위자에 영향을 미치며, ‘구성’하게 된다. 교황의 권위, 그리고 그의 회칙이나 그가 소집하는 공의회의 결정도 마찬가지로 전 세계의 모든 행위자를 ‘구성’하는데 영향을 미친다. 역으로, 세계의 신자들이 처한 상황이나 인식의 변화는 각 성당에서 취합되어 교황청으로 모여들며, 이는 교황을 비롯한 가톨릭 지도자들의 진로, 그리고 교리 해석에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상호 영향과 구성이 역동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 베네딕토 16세는 세계통치에 대해서는 비관적이지만, 세계 정치적 권위체를 세우고 싶어한다. 이것이 국제정치적으로 가진 의미는?
1) 현실주의 : 국가를 대신하여 ‘세계정부’를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가들은 자기네들의 주권을 모두 넘기려 들지 않을 것이다. 교황의 ‘세계통치’에 대한 비관적인 시각은 옳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권위체’, 아마 카톨릭 교리가 지배하는 권위체‘를 세운다 치더라도, 그 파급력은 현실정치의 벽에 부딪혀 사라질 것이다.
2) 자유주의 : 세계통치에 대한 비관은 성급하다. 국가간 경제 협력체가 늘어나고 있으며, 그 협력의 정도가 심화되고 있는데, 이는 EU에서 볼 수 있듯 정치 협력체로 발전해나갈 수도 있다. 교황이 바라는 ‘세계 정치적 권위체’는 그 형성이 용이하다. 전세계 카톨릭 신자들이 갖고 있는 크리스트교 교리는 국경과 민족을 넘어선 공동의 기반이 된다. 카톨릭 교회의 선도하에 국가들이 모여 행동함으로써 모두에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면 그 움직임은 더욱 빨라질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교황이 비관적으로 보고 있는 ‘세계통치’로 이어질 수도 있다.
3) 구성주의 : 전 세계의 가톨릭 신자들이 갖고 있는 교리에 대한 충성도, 그리고 그에서 비롯된 활동들이 ‘세계정치적 권위체’의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그리고 이 신자들은 이런 체제에 어떤 생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사회참여적 교황
세 번째 회칙인 ‘카리타스 인 베리타테(Caritas in veritate, 진리 속의 사랑)'를 7월 7일 화요일에 발표한 베네딕토 16세는 전임자들의 사회참여를 재개한다. 2007년에 예정되어있었지만, 경제위기로 늦춰진 이 교황의 편지는 때맞춰 발표됐다. 이탈리아 아퀼라에서 열릴 G8 정상회담 전날에 말이다. 각각의 사회참여적 회칙들은 전세계적 격변이나 급격한 변화에 부합했다. 레오 8세의 Rerum novarum(1891)은 산업자본주의의 시작에, 피오 6세의 Populorum progressio(1967)는 개발원조가 탈식민지화를 지연시킬 때,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의 Centesimus annus(1991)는 공산주의의 붕괴 후에 발표됐다.
베네딕토 16세는 카톨릭 교회의 사회참여적 사고를 뒤엎지는 않는다. 이 사고는 1세기 전부터 공동선(共同善)을 위한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여기에 세계화에 대한 이해(理解)를 반영한다. 교황은 “총체적인 인간성”을 강론하는데, 인간이 “보호하고 가치를 부여할 최우선의 자산”임을 강력하게 강조한다. 요한 바오로 2세처럼 베네딕토 16세는 시장경제를 옹호하긴 해도, 그것이 “공동선”을 고려하고, 신의 은총을 회복시키는 조건에서만 그렇다.
주교들에게 연설한 이 140쪽 분량의 문서에서, 베네딕토 16세는 고전적인 교황의 어조를 유지하지 않는다. 그가 “신이 없는 인간성은 비인간적”이라거나, 경제가 “공동의 장”이 되길 원한다고 주장하던 때처럼 말이다. 그는 전임자들이 여러 번 비난했던 이 자본주의에 사회윤리적 교훈을 내린다. 로마 주교(교황)는 세계화의 장점을 인정한다. 이 세계화가 개발을 용이하게 하고, 부를 잘 분배하는 한 그렇다. 하지만 교황은 세계화의 역기능을 지적한다. 즉 금융활동의 무질서, 투기, 국가를 이동하는 유동성의 그릇된 관리, 부패, 자연자원의 무질서한 착취, 도시화, 실업, 기아 등등 말이다.
우리는 베네딕트 16세가 도덕적이고, 매우 보수적인 교황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는 사회참여적인 교황이기도 하다. 경제위기에 비추어 진정으로 규제된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주교인 것이다. 이번에 그는 “성장할 운명”이란 국가의 역할이 ‘재고(再考)’되어야 한다고 판단하면서 자신의 치세에 들어갔다. 루이즈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가 우리의 칼럼에서 G8을 폐지하고 G20을 상설기구화 하자고 말할 때, 베네딕토 16세는 세계통치에 대한 브라질 대통령의 비관주의에 동참한다. 교황은 일종의 “세계 정치 권위체”도 강론한다. 교황의 꿈 말이다.
# by | 2009/07/08 13:52 | 프랑스어 연습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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