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곰탕 이야기

(2004.05.21) 블로그인에 썼던 나주 곰탕 이야기

원문 : http://www.blogin.com/blog/main.php?datX=00657884&keyX=numr&keyY=00265170

 멋따라, 맛따라, 풍문따라 흘러들어온 나주. 태어나 하룻밤도 체류하지 못했던 남도였기에 군대가 아니고서야 이 곳에서 지낼 길이 있을까 싶어 대뜸 지원해서 배속된 나주 8989부대. 그러나 그것은 젊은 혈기에서 비롯한 치기였을뿐, 3월말 나주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해서 느낀건 불안감과, 이질감,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방공포병 대대 정훈장교로서의 삶에 대한 두려움뿐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신임 소위의 '각'잡힌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호흡이 가빠지고 있었습니다. 아...이곳에서 2년을 어떻게 보낼까...

 이윽고 제 마중을 나와주신 선배 정훈장교와 군의관께서는 대뜸 '각'부터 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신임 소위라도 그렇지...사복을 입고서도 각을 잡으면 어떡하냐고 하시면서 웃음을 참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하신 말씀...

 "배고프지? 저녁먹고가자. 뭐 먹을래?"

 "저는 어떤게 좋을지 잘 모릅니다. 선배님께서 데려가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최대한 딱딱하고 각잡힌 목소리로...)

 "나주에 왔으면 이걸 먹어야지."

 하면서 저를 데려가신 곳은 나주 시의회 근처의 곰탕 가게. 긴장한 탓에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이 쓰이고, 제대로 밥술이나 떠 먹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게다가 곰탕이라 하면 뿌연 국물에 독특한 노린내가 떠올라 싫은 마음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선배장교께서 사주시는 것이니 최대한 절도있게, 국물 한방울 남기지 말고 먹어치우자.'라고 마음을 굳게 먹은채 가게로 들어섰습니다. 

 하지만 웬걸요...나주 곰탕은 제 생각과 달랐습니다. 맑은 국물에 맛있는 냄새. 서울에서 '곰탕'을 시키면 나오던 뿌연 국물의 고깃국이 아니었습니다. 고기 사이로 보이는 국에 말아진 밥알들이 숟가락질을 재촉하게 했습니다. 결국 한 숟갈, 두 숟갈 먹다보니 이내 훈련단에서 훈련받은 식습관이 드러나 밥알도 씹지 않은채 허겁지겁 곰탕을 먹어치우고는 선배장교들께 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아...이제 불호령이 내려지겠구나...'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하지만 선배장교님들은 "이제야 좀 보기 좋구나..."라는 말씀을 하시며 앞으로의 생활에 대해서 이런 저런 말씀을 해주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도 앞으로 나주에서 펼쳐질 제 군 생활의 첫 장에 대해 편안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이 곰탕을 꼭 다른 분들께 대접해드리고 싶다고 말입니다.

 얼마전 사령부 정기 전투태세 검열을 마친 뒤, 신임 소위임에도 불구하고 위로 휴가를 받았습니다. 배속후 처음 집에 다녀왔는데 부모님께서 귀대일에 저를 나주까지 데려다주시겠다고 하시는겁니다. 혼자 갈 수 있다고 계속 말씀드렸지만 사양하는 것도 효가 아니겠다 싶어서 결국은 부모님과 함께 밤을 도와 나주에 도착했습니다. '옳거니. 오늘 곰탕을 드시게 해야겠구나.' 배속일의 그 곰탕집으로 모시고 가서 제가 처음 힘들여 번 돈으로 식사를 대접해드렸습니다. 정말 맛있다고 하시며 부모님은  식탁위의 김치 한 점, 깍두기 한 조각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지난주 국방대 순회교육단 교수님을 모실 때도 부대 안의 점심식사가 여의치 않아 이 곳으로 모셔왔습니다. 곰탕이 너무 맛있는 나머지 교수님의 식사 속도를 고려치 않고 허겁지겁 먹어대어 큰 결례를 범했습니다만 교수님께서는 맛있었다시며 제 마음을 억누르시고 당신께서 식사대를 내셨지요. 죄송스러운 생각이 뇌리를 가득 채웠지만 제가 추천해드린 음식을 맛있게 드셔서 기쁜마음도 있었습니다.

 철매장병 여러분. 나주는 소위 격오지라고 불린다 들었습니다. 서울과 부산에서 가장 멀기 때문이고 대도시(광주)가 멀리 떨어져있기 때문일겁니다. 하지만 저는 격오지라 하더라도 이곳에 복무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복무하면서 답사하리라 벼르고 있는 문화유적도 많고, 매해 봄, 배꽃과, 벚꽃, 개나리, 진달래등이 어우러진 꽃산과 꽃들을 바라볼 수 있고, 그리고 맛있는 곰탕이 있어 가끔 이곳에 오실 제 손님들을 대접하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

(2008.03.02) 서울 신림동 나주곰탕

사진출처 : http://blog.naver.com/ubung333
평점 : ★★★ (보통) - 서울 신림동에서 이 정도면 만족해야하나?

1.  나주 곰탕은 맑고, 깨끗하고, 달디 단 국물이 가장 중요하다.
    살코기만을 우려내야 가능한데, 젤라틴과 지방질이 섞이면 국물이 뽀얗게된다.

2. 고기를 씹었을 때 느껴지는 독특한 풍미(피맛?)이 강하지 않다.
    살코기의 양이 적어서일까… 고소한 느낌이 와 닿지 않는다.

3. 수도권의 가게들이 내놓는 김치에 비해 젓갈 함량이 높긴 하지만,
    무와 배추에 잘 배어들어가지도 않았고, 남도의 맛이 느껴지질 않는다.

4. 타지에서 맛을 유지하려면 가끔씩은 내려가서 훌륭한 가게들을 찾아다니며
    계속 공부를 해야 하는게 아닌가 생각한다.

* 달걀지단 고명을 듬뿍 얹어주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쩝...
* 네이버 블로거 '비밀이야'님(mardukas)님의 남도 포스팅 읽고,
   박슬기 예)중위의 말이 생각나 늦은 시간에 찾아봤음.

by 테라포밍 | 2008/03/02 19:56 | 일상 | 트랙백 | 덧글(1)

트랙백 주소 : http://enterre.egloos.com/tb/118963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CP at 2009/06/02 16:50
8989부대 검색하다 오게 됐네요.
133대대 2002년에 제대한 장병입니다.
포스팅 보니 나주 하얀집이 무지하게 생각나네요.
덕분에 간만에 군생활에 대한 추억도 떠오르고 감사합니다.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