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인지 실화인지 알 수 없는...

가상인지 실화인지 알 수 없는, 재미없는 이야기 하나.

1. A국과 B국이 있습니다. A는 한 때 잘 살았던 나라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합니다.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농업에도 적합한 기후를 갖고 있지만, 부패하고 혼란스러운 정치로 말미암아 제대로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국민들의 상당수는 매우 가난하며, 해외에서 일하는 가족-친척들이 보내주는 돈으로 살아갑니다. 그런만큼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나가려는 사람이 많고, 나라도 이들이 벌어다 주는 돈에 국민경제의 상당부분을 의존하고 있습니다.

2. B국은 한 때 A국보다 못살았습니다. 하지만 시대와 환경을 잘 탔고, 거기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한 눈 팔지 않고’ 열심히 일한 덕에 지금은 A국보다 아주아주 잘 삽니다. 이런 B국에 와서 일하고 싶어하는, 그리고 일하고 있는 A국 사람이 많습니다. B국에서도 A국 현지에서 저렴한 노동력을 이용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새로운 기회를 찾고 싶다는 사람도 있었죠. 이래저래 양국간에 인적 교류는 아주 활발합니다.

3. 그런데 A국에는 이런 [국내법]이 있습니다. “외국인은 A국내에서 일정규모 이하의 상업을 할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가난한 자국민을, 자국 국민경제를 보호하기 위한 조항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기회를 찾아 A국으로 온 B국 사람들은 ‘장사’를 해서 돈을 벌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B국 이주자들은 A국의 법망을 피해 소규모 상점들을 열어 A국 사람들에게 물건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4. 어느 나라가 그렇지 않겠습니까마는, A국에도 부패한 국가공무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고질적이고, 수가 많은 게 탈이었죠. B국 사람들의 상점은 이자들의 먹잇감이 됐습니다. 정당하게 기소하고 본국으로 추방하는 게 아니라, 뒷돈을 받고 상업활동을 묵인해준 것이죠. 타고난 근면성 덕인지 장사는 아주 잘 됐습니다. 하지만 번창하면 번창할수록 떼이는 돈도 많아졌습니다. B국 사람들은 억울하다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A국법으로 따지자니, 결국 모든 걸 잃을 편은 애초에 법을 어기고 무리했던 자기들이었거든요.

5. 이런 사정이 B국 본국에 알려졌습니다. 그러자 여론이 들끓기 시작합니다. “선량한 재외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한다는 외교부는 도대체 뭐하는 놈들이냐!” “그딴 못사는 나라 하나 어쩌지 못하는 정부라니 무능하기 짝이 없구나!” 언론들도 덩달아 특파원을 보내서는 정부가 무능하다는 요지의 보도를 연일 내보냈습니다.

6.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게 빠졌습니다. 처음에 빌미를 제공한 것은 불법 장사를 시작한 B국 국민들이라는 사실이죠. 게다가 ‘주권평등’, ‘내정불간섭’이라는 [국제공동체]의 기본원리에 대한 인식이 없던 나머지, ‘A국따위는 우리가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이상한 생각이 B국내에 넓게 자리하고 있었던 것도 문제였습니다. 과연 B국 정부가 ‘그런 악법을 철폐하고 부패공무원들을 감옥에 보내라’고 공식으로 ‘요구’했다면, A국이 콧방귀나 뀌었을까요? 오히려 ‘내정에 간섭하는 불한당 국가’라고 다른 나라들에 광고를 하고 다니면 다녔지... 정말이지 B국 정부에는 뾰족한 수가 없었습니다.

7. 그러던 어느 날, B국에서 일하려고 비자 발급을 받으려던 A국 사람들에 충격적인 소식이 하나 전해졌습니다. B국 총영사가 ‘본국의 명령은 물론 대사의 지시 없이 단독결정으로’ A국 사람들에 대한 B국 입국 비자 발급 업무를 무기한 중단한다는 공고를 내건 겁니다. 당장 취업기회를 잃을 수도 있던 A국 사람들은 자기네 지역구 국회의원들을 찾아가 상황을 해결해달라 하소연을 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본 의원들은 B국 국민들의 ‘불법’ 상행위와, 이를 이용한 부패공무원들의 병폐가 비자발급중단의 원인임을 알게 됐습니다. 국가경제의 상당부분을 해외취업자가 벌어온 돈에 의존하는 A국이니만큼 당장 의원들은 자국 경찰에 ‘강력한 압력’을 넣었고, 사태를 개선하겠다는 약속에 발급업무는 재개됐습니다.

자, 이 이야기에 대해서 어떻게들 생각하십니까? 이도저도 못하는 B국의 사정을 타개한 B국 총영사는 과연 제대로 행동한 것일까요? 뒷이야기(8~10)가 있습니다. 어느 정도 리플이 달린 다음에 이어서 쓰겠습니다.

by 테라포밍 | 2010/02/09 22:03 | 답안지에는 못 쓸 이야기 | 트랙백 | 핑백(1) | 덧글(0)

세 번째 PSAT

언어논리 75.0
자료해석 77.5
상황판단 70.0
총점      222.5
평균       74.17 (올해는 과연?)
(* 2009년도(작년) 평균 65.5/ 외교통상직 커트라인 64.9(합격)
 * 2008년도(재작년) 평균 59/ 외교통상직 커트라인 61(불합격-평락) )

시험장을 나설 때 화가 많이 났습니다. 마음만큼 답을 못냈어요. 언어는 3개, 자료는 8개, 상황도 8개 정도를 찍고 나왔거든요. 자료해석이 2년간 발목을 잡아서(42.5 , 55.0) 시간을 많이 들여 공부했는데... 10분 추가도 됐는데 8개를 찍고 나오다니... 학원모의고사보다 배나 남겨놓고 나오나... 어휴.... 언제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판단도 확신없기는 매한가지였고... 올해는 '취약분야'인 법조문 적용문제가 많이 나와서 엄두도 못내고 그냥 넘어간 게 많았어요.

학원 모의고사 10분 추가해서 풀어볼 때, 최하 2문제에서 5문제까지 추가로 풀 수 있었기 때문에 아아... 이거 올해는 70은 넘겨야 기대할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시험 다 마치고 나올 때 기분은 '안될 것 같네...'하는 마음 뿐이었어요. 주변에서 통화하는 어떤 '젊은' 응시생이 '언어는 다 풀고, 자료는 두 개 찍고, 상황은 좀 어려웠다'는 투의 통화를 하는 걸 들으니 낙담의 도는 더해지고....

그래서 어젯밤에 채점할 엄두를 못냈습니다. 얼굴은 죽상, 우거지상... 친구 만나서 술, 진창 마시고 그냥 자버렸습니다.

그리고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아침에 채점을 해보니... 찍은 게 많이 맞기도 했고, 자료해석 분야에서 '의외로' 계산과 답 선택이 잘 돼서 세 분야중 가장 높은 점수가 나왔습니다. 언어가 80을 넘길 바랐고, 상황은 75정도 나왔으면 했는데, 그래도 자료 점수가 '가장' 잘나오니 '족쇄'가 풀린 느낌이었어요. 다음넷 [행시사랑], [자유인과 외교관을 꿈꾸는 사람들]을 돌아다녀보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지만' 비교적 안정권인 것 같아서... 결과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성원해주신 분들, 감사드립니다. 이제 4월 20일경에 치러질 2차시험준비에 매진하겠습니다.

* 덧글을 막아놓습니다. 작년에 같은 주제의 포스트를 올렸을 때, 이글루스판 PSAT 토론장이 될 뻔 해서... :-)

by 테라포밍 | 2010/02/07 13:07 | 일상 | 트랙백 | 덧글(1)

<졸고천백(拙稿千百)>(최해) 中

은자의 이름은 ‘하계’, 혹은 ‘하체’라 하며, ‘창괴’는 성이다. 대대로 용백국의 사람이다. 원래는 성이 두 자가 아닌데, 은자 때에 우리나라의 음이 느리기 때문에 이름과 함께 이렇게 바꾸었다. 은자는 어릴 적에 벌써 하늘의 이치를 아는 듯하였으며, 공부를 하면서부터는 한 방면에만 얽매이지 않았으며, 겨우 그 취지와 방향만을 아는 정도에 그치고, 한 가지도 공부를 완전히 마친 것이 없었으니, 그것은 넓게 보기만 하고 깊이 파고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츰 자라면서 비장한 각오로 출세하는 데 뜻을 두었으나, 세상에서는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가 남의 비위를 잘 맞추지 못하고, 또 술을 좋아하는 데 원인이 있다. 그는 술을 두어 잔만 마시면 남의 좋은 점, 나쁜 점을 얘기하기를 좋아하여, 도대체 귀로 들은 것은 입 속에 그대로 간직할 줄을 몰랐다. 그러므로 남에게 소중히 여김을 받지 못했다. 벼슬을 할 뻔 하다가는 곧 배척을 당하여 쫓겨나게 되었다. 친구들이 애석하게 여겨서 그의 성격을 고쳐주려고 더러는 권하기도 하며, 더러는 책망도 하였으나,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그러다 중년에 이르러서야 스스로 뉘우쳤다. 그러나 이미 그는 얽매여 있을 사람이 못된다고 사람들이 인정하였기 때문에 마침내 쓰이지 못하였다. 은자도 또한 이 세상에 뜻이 없었다. 은자는 일직이 이렇게 말했다. “내가 서로 내왕하던 사람은 모두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인정받지 못한 사람이 많았으니, 여러 사람에게 미더움을 얻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것은 그의 단점인 동시에 장점도 되는 것이었다. 늦게 갑사의 중을 따라가서 땅을 빌려 농사를 지었는데, 농원을 개척하여 ‘취족’이라 이름하고, 스스로 ‘예산농은’이라 호를 지었다. 그는 자리의 오른쪽에 ‘명’을 지어 붙였다. “너의 농원은 삼보(주:부처의 별칭)로부터 받은 무거운 은혜로다. 만족하는 것이 어디서 온 것이냐. 부디 잊지 말지어다.” 은자는 평소에 불교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마침내 그들의 소작농이 되었으므로 대저 평소의 뜻이 틀어진 것을 하소연하여 스스로를 조롱한 것이다. -최해, <졸고천백(拙稿千百)>

PSAT 모의고사 언어논리-상황판단 문제를 풀다보면 좋은 글들을 많이 접하여 즐겁던 차, 오늘 읽은 지문이 딱 내 처지와 심경에 맞는 것 같아 옮겨 적는다. 문제에서 이 인물에 적절하다 제시한 성어와 속담은 ‘재승박덕’, ‘빛 좋은 개살구’였으니, 그 모두가 마음을 후벼파는 것 같아, 괴로웠다.

지난 3년, 아니 10년을 나는 이렇게 내실(內實)없이, 박덕(薄德)하게 보냈구나. 이를 어쩔꼬...

출처 : 합격의 법학원 [2010년 행정-외무고시대비 제 2회 전국모의고사] 상황판단 23번문제.

by 테라포밍 | 2010/01/31 22:46 | 일상 | 트랙백 | 덧글(0)

1월 16일 이야기 - 2. 장욱진 20주기 전시회 관람기

2. 걸어서 고개를 넘은 이유에는 정문 옆 학교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고 장욱진 화백 20주기 전시회’를 보려고 했던 것도 있습니다. 현장에서 찰나를 놓치면 돌이킬 수 없는 음악과 달리, 미술은 한 작품 한 작품 시간을 들여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눈에 띄는 전시회들은 되도록 가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었습니다.’ 마르크 샤갈, 르네 마르그리트, 루오(3년전 대전 전시회) 등등... 하지만 요 몇 년간은 그렇지 못했죠.

한 작품 앞에 서면 저는 으레 이런 순으로 감상을 합니다. 1) 전체의 요소를 하나하나 살펴보고, 2) 작가는 무엇을 보고, 느끼고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원(元, 原) 이미지-소재를 떠올려봅니다. 3) 제목을 보고 그에 담긴 의미와 내 생각이 부합하는지 생각해봅니다. 4) 이렇게 생각했던 것을 짤막한 글로 떠올려봅니다. 감상문이랄까, 아니면 경탄조의 시(詩)라든가... 가끔은 이렇게 떠오른 것들을 포스트잇에 적어서 그림 옆에 붙여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장욱진 화백의 주요 소재는 가족-대개 부모와 딸 하나가 주(主), 풀밭에 누워 하늘을 쳐다보는 어린이, 새-특히 까치, 그리고 나무와 일월(日月), 유유히 흘러가는 강(江)이었습니다. ‘주요 소재’라 말할 수 있다는 건, 상당수의 그림이 바로 이 소재들로만 그려졌다는 건데... 게다가 상당수 작품의 구도가 ‘알아보기 쉬울 정도’로 반복된다는 점에서... 전시회 현장에서 생각했던 것은 ‘매너리즘이 아닌가’ 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눈에 확 들어왔던 건, 초기 작품들의 촌부(村婦), 촌동(村童)의 표정이 살아있는 얼굴(단순화되고, ‘막’그린 것 같으면서도 오롯한!), [자화상](1951), 그리고 말년작인 [닭을 쫓는 소년](마르크 샤갈의 느낌이 강하게 들었는데...)과 최후의 [달과 노인](인생의 Coda) 정도였습니다. 반복되지 않았다 할지, 작가가 ‘의도’를 강하게 담아 그렸기 때문인지...

하지만 좀 더 생각을 해 보니, 그 작품의 붓질, 매직질, 먹질 하나하나가 ‘중심을 잃고 허투른 게’ 없었어요. ‘되는대로, 가는대로’ 긋고 놀렸다는 생각이 안들었습니다. 특히 ‘아이(兒)’들을 그린 획 하나하나에 생동감이 깃들어 있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생각해보았습니다. “새로운 것은 ‘진정한 나’가 성장하는데 자양분일 뿐. 오랜 세월 끊임없이 반복함으로 ‘나 자신’을 다듬어, 본질을 꿰뚫는 마음을 단련하고, 비로소 언행에 한 치도 어긋남과 흐트러짐이 없는 일가(一家)를 이룬다.” 이는 보수(保守)에서 배울 바입니다.

하지만 정말 안타까웠던 것은, 장욱진 화백의 눈과 마음이라면, [서예(書藝)]의 일가(一家)를 이룰 수도 있었을 것 같다는 겁니다. 이는 먹그림뿐만 아니라 다른 유색채 그림들에서 나타나는 본질 관념, 획의 생명력, 그리고 대상에 대한 사랑에서 느꼈던 겁니다. 이를 확인할 작품이 출구에 조그맣게 자리하던 [용(龍)]자(字)였는데 이는 좀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하지만, 그래도 다른 작품들에서 그 가능성을 느꼈습니다.

장난스러운 생각이지만, 많은 작품에서 기와집과 초가집의 이분(二分)구도가 두드러지는데, 작가의 빈궁한 삶에서 비롯된 빈부(貧富) 개념을 일관되게 제시하는 건 아닌가? 흰 칠한 기와벽 뒤에서 난(蘭, 그것도 고급스러운 화분)을 손질하는 사람의 모습은 비난조(非難調)일까? 아니면 작가의 바람일까? 여유있는 촌로(村老)의 퉁방울스러운 눈은 누구를 닮은 것 같구나... 하는 ‘불손하고도 불순한’ 생각도 조금 들었습니다.

* 개인적으론 이번 전시회나, 미술관 소장품 전시의 큐레이팅이 매우 불만스러웠습니다. 시대순으로 나열을 했는데, 그건 그저 ‘안전빵’이죠. 아무리 작품이 많아도 좀 솎아내는 건 어땠을까요? 전시회에 ‘포인트(에지?)’를 주지 못했다고 봐요. 그리고 유화-매직화-먹그림을 구분했는데... 과연 이는 ‘상상력의 빈곤’때문인 건지? ‘고흐’처럼 음영과 에너지의 흐름을 담아낸 작품들을 색채와 무색채로 대조시켜보는 ‘대담한 시도’는 해볼 수 없었을지? ‘틀에 박힌 전시’를 봤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관내 소장품 전시에도 ‘개성’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것 있습니다’ 하고 그냥 늘어놨다는 생각밖에 안들더군요. 장욱진 화백의 그림에 어울리는, 비교 가능한 작품은 전시층 중앙 로비에 있던 ‘군무(群舞)’, 그리고 임옥상의 ‘독도 토해내기(판화)’정도랄까... ‘물방울 작품’과 [화훼연습], [돌소리]. [Umber & Marine] 등 다른 작품은 그다지... 메인 (Main)전시를 위한 전체적 조화가 없이 그냥 되는대로 내놨다 싶었어요. 물론 중앙 로비의 조형물들도 마찬가지고...

미술관이 지어준 회사처럼 운영되는 건 아닌지, 아니면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분야 전문가들이 관료화된 것인지... 좀 대담한 사람이 전시를 계획했으면 합니다.

(그림출처 : 동아일보 홈페이지 http://news.donga.com/3/all/20091229/25094436/1 )
(고 장욱진 화백 기념 홈페이지 http://www.ucchinchang.org/    http://www.changucchin-museum.com/main.html )

by 테라포밍 | 2010/01/17 18:10 | 일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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