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11일
절제된 도발에 담긴 의도 - 한국 따돌리기?
0. 오늘(어제) 오전 11시~12시 사이에, 서해상에서 북한 경비정과 한국 해군(이하 아군) 경비정간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사건 직후 발표된 개략적 보고에 더하여, 내일(11일)이면 해군-합동참모본부-국방부의 합동 조사 결과, 교전 돌입 배경과 상황, 그리고 피해내역이 자세히 드러날 것이다. 일단 아군의 인명 피해는 없으니, 그 무엇보다도 다행스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1. 그러나 이번 교전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몇몇 보인다.
(1) NLL월선에 대한 경고방송에도 불구하고 북한 경비정이 남진(南進)을 계속했다는 것은, 실수가 아니라 고의라고 봐야 한다. 그리고 이는 북한군의 특성상, 최상층부의 명령으로 이뤄진 일일 것이다.
(2) 2002년 2차 서해교전 이후, 아군의 도발 대응체계가 훨씬 강화되어, ‘위장 기습’이 먹히기엔 어렵게 됐다. 따라서 어떤 이유로든 월선 도발을 일으킨 북한의 경비정-함선은 무력충돌 발생시 ‘매우 심각한’ 타격을 입을 ‘운명’이었다.
(3) 게다가 NLL을 남하한 북한 경비정은 단 한 척이었다. 일을 크게 벌일 생각이었다면, 아군에 상당한 피해를 입힘과 동시에, 병력의 생환을 위해 여러 척을 보냈을 법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게다가 당 교전시 황해도의 육상 지원병력들에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고 한국 국방부는 발표했다.
(4) 북한 경비정이 반파된 상태에서 북상(혹은 도주)했다는 것은, 1) 교전 중에 뱃머리를 돌릴 수 있었다는 것이고, 2) 아군 경비정에 더 이상의 사격을 하지 않았기에, 아군 지휘관이 발포중지 명령을 내렸을 것임을 뜻한다.
전공을 세운 해군 장병들에게 미안하지만, 상기 네 가지를 종합할 때 이번 월선 도발은 ‘극도로 절제된 계획적 도발’이라고 본다. 북한 상층부의 명령은 [NLL을 넘어가 교전을 벌이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생환하라. 지원은 없다]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 추가로, 북한 경비정이 아측에 가한 사격을 멈춘 시점이 언제였는지를 알아보면, 이번 교전의 성격이 더 잘 드러날 것이라 본다. 즉 1) 아군 대응 조준사격이 시작되자 즉시 교전을 중단하고 함로를 틀었는지 2) 인명-함체 피해를 입으면서도 계속 아측에 포 사격을 하다가 돌아갔는지 여부를 알아보는 것이다. 교전도중 갑판(실외)에 얼마나 많은 북한 병사가 있었는지(안전을 위해 최소병력만 노출시켰는지 여부), 퇴각기동을 언제 시작했는지를 알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2. 따라서 이 ‘절제된 도발’의 원인(북한 최상층부의 의도)을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
먼저 한국을 대상으로 놓고 원인을 생각해보자니, 북한이 이번 도발로 얻을 이익이 무엇일지 짐작이 되질 않는다. 먼저, 군사적으론 해군력의 차이를 드러낸 데다, 북한 해군의 사기저하가 있을 테니 실익이 없다. 다음, 정치적으론 1) 현 한국 정권에 대한 견제라 보기엔 투입한 군사력이 무의미하다. 2) NLL을 부인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이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3) 이번 교전의 규모는 한국 사회의 분열과 혼란을 조장할 수준이 못된다.
병력과 함선 피해를 입을 위험을 무릅쓰고 이번 일을 벌였겠지만, 이번 일로 지원 예정인 (좀스러운) 옥수수 백만 톤일만 톤이 더 늘어날 리도 없을 것이고(오히려 취소될 수도 있을 것이고), 한국 정부가 북한에 유리한 방향으로 정책전환을 하지도 않을 것이다.
3. 분석 수준을 좀 넓혀보면 가능성 있는 요인이 하나 보인다. 바로 대 미국 차원이다. 미국은 굳건한 한-미 공조를 바탕으로 대북 대화에 나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까지의 상황으로 보아, 한국 정부는 외교력을 동원하여 오바마 정권이 대북문제에서 한국을 ‘따돌리는’ 일이 없도록 극력대처하고 있는 것 같다. 그 결과, 얼마 전 있었던, 북한 고위급 인사의 미국 방문과 교섭이 (북한에) 별 실익 없이 끝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한-미 공조를 이간질하여 ‘통미봉남’을 달성하겠다면, 북-미 협상테이블에서 한국의 존재 가치를 떨어트려야 한다. 북-미 양자간에 충분히 해결책을 얻어낼 수 있는데도, 한국의 존재가 ‘발목을 잡기 때문에’ 협상진전이 어렵다는 어필을 해야 한다. 한국의 대북 요구사항을 미국이 테이블에서 꺼내놓는 것, 심지어 한국의 존재가 거론되는 것조차 아예 들은 척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북한은 이 회담이 북-미 ‘양자’대화임을 끊임없이 강조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북한은 한국과의 긴장 구도를 조성하여, ‘한국과의 협력이 불가한 구도’로 향후 대화를 이끌어갈 수 있는 것이다.
곧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표가 북한을 방문할 것 같은데, 이번 교전이 한국 따돌리기를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병력과 물적 피해가 심대한 것에 비해 그다지 큰 이익은 아니라 할 수 있지만, 이것 말고는 납득할만한 북한의 의도가 떠오르질 않는다. 지원 병력 하나 없는 경비정 한 척으로 벌인 ‘절제된 도발’에 숨어 있을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 이번 교전에서 승전을 부각시키고 영웅을 만들 매체는 ‘국방일보’하나면 족하다. 그러나 분명 내일(11일)자 몇몇 일간지가 ‘국방일보’보다 더 한 설레발을 칠 것임이 불 보듯 뻔하다. ‘전승(戰勝)’을 부각시키는 매체는 가치 없다고 봐도 좋다. 다각적-심층적으로 이번 도발의 의도를 분석한 매체가 ‘경쟁력’을 키워가는 우량매체라고 보면 될 것이다.
# by | 2009/11/11 00:55 | 답안지에는 못 쓸 이야기 | 트랙백 | 덧글(4)








